
드라마 한 편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 구조가 특별해서도 아니고, 화려한 CG가 있어서도 아니다. 딱 한 장면, 한 캐릭터, 혹은 분위기 하나가 계속 여운을 남긴다. OCN 드라마 킬잇은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도 특유의 어둡고 차분한 톤이 삶의 한켠을 건드리는 느낌. 이번 글에서는 내가 직접 다시 되짚으며 느낀 감상과, 시청자 입장에서 놓치기 쉬운 매력을 솔직하고 사람 냄새 나는 방식으로 풀어보려 한다.
처음 킬잇을 보기 시작한 건 단순했다. 액션이 보고 싶어서였고, 잠깐 틀어두려던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첫 회만 지나도 묘하게 빠져들었다. 세련되게 정리된 화면, 말보다 눈빛과 분위기로 끌고 가는 전개, 그리고 무겁지만 과하지 않은 감정선. 무엇보다 ‘과묵한 남주 + 직감 좋은 여주’ 조합이 요즘 보기 힘든 균형을 만들어준다.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면서도 감정 표현을 급하게 하지 않는 흐름이 오히려 더 깊게 박힌다.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설명하지 않는 선택”**에 있다고 본다. 캐릭터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모든 걸 대사로 풀지 않는다. 대신 화면, 구도, 간격, 그리고 여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고, 스스로 해석하며 따라가게 된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 오래 남는다. 시청자가 비어 있는 칸을 채우게 만드는 드라마는 결국 시간이 지나도 다시 떠오른다.
킬잇의 액션도 눈여겨볼 만하다. 화려하게 터트리기보다는 절제된 움직임이 훨씬 많다. 총소리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계산된 느낌이 있고, 불필요하게 흔드는 화면도 없다. 그래서 긴장감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피가 튀는 장면보다 오히려 조용한 액션이 더 강렬하다. 요즘 드라마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라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또 하나,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완성형’이 아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각자 짊어진 사연이 무겁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인물은 끝내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어떤 인물은 진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어쩌면 우리 삶과 닮았다.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늘 무언가 비어 있고, 그 빈틈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하루를 버티는 모습 말이다. 드라마 속 그 고요한 고백들이 자꾸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킬잇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장면 몇 개가 오래 남는다. 빛이 스치듯 지나가는 복도, 한밤중 조용한 골목,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 이런 이미지들이 스토리와 섞이며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속에서 ‘이미지로 기억되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킬잇을 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분위기를 잊지 못하는 듯하다.
스토리가 크게 뒤틀리거나 복잡한 퍼즐을 요구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이야기 속에서 감정의 결이 더 선명하게 잡힌다. 시청하는 동안 잔잔하게 깊어지는 느낌. 무엇보다 액션과 감정선의 균형이 자연스러워서 과하게 소비되는 자극 대신 차분하게 빠져드는 몰입감을 준다.
킬잇은 단순히 ‘킬러 이야기’가 아니다. 태생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미세한 온도 변화들이 핵심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큰 사건보다도 작은 표정, 작은 행동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다. 말 대신 호흡이 마음을 흔드는 드라마. 그래서 다시 떠올려도 감정이 남아 있는 드라마.

킬잇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오래된 작품이라고 넘기지 말고 한 번쯤 천천히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하루의 끝에 조용히 켜두면 딱 좋다. 진득하게 빠져드는 감정의 여운이 오늘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봤던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돌려보는 것도 좋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장면의 결이 새롭게 보인다. 작품이 가진 묵직한 여백이 다시금 마음을 흔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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